2009년 04월 18일
친절
한국인 중 최소 절반 이상은 그 이름을 알만한
'ㄷ'이라는 호를 쓰는 'ㄱ'이라는 사람이 있다.
철학자이자 대학교수로 여러 권의 책을 냈으며,
사람에 따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도 하고
또는 그를 그저 입심만 강한 헛소리꾼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뭐 대충 누구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그래도 실명을 거론하는 건 예의에도 어긋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그저 'ㄱ'선생이라고 하겠다.
그 'ㄱ'선생은 천안 출신인데,
그의 형이 세무소 옆에서 병원을 하고 있다.
동생의 유명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환자를 상당히 잘 본다고 소문이 자자하단다.
(하단다 - 라고 표현하는 건 난 잘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을 듣고 어머니께서 어제 그 병원을 찾아가셨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오히려 몸이 더 아파서 돌아오셨다.
어머니께서 그 사정을 들었는데 이러했다.
병원에 들어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기다리는데,
분명 순서가 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더 늦게 온 환자를 먼저 보더란다.
하여 '혹시 예약을 한 환자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미리 왔었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던 환자들'이라고
간호사가 대답을 해주더란다.
하지만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오는 환자가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 계속된다면
그 소릴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더구나 그중 한 환자에게는 간호사가
'오늘은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라고까지 말을 해놓고서,
어머니에겐 역시 같은 소리로 변명을 해대기까지 한다면 말이다.
늦게와서 먼저 진료를 받은 그 환자들이
혹시 당장 의사가 보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상황이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간호사들이 대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여러번 그 병원을 찾은 '단골'이었을 뿐.
늦게 온 환자를 먼저 보는 것 자체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먼저온 이에게 제대로 양해만 구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짓말로
변명이나 해대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어머니께선 결국 크게 화를 내시고 나오셨단다.
간호사가 뒤따라 나오면서 불렀지만,
이미 분노하신 어머니께선 그냥 돌아오셨단다.
어쩌면 그 병원은 나름 아주 친절한 곳일 수도 있겠다 싶다.
늦게 가도 먼저 온 사람보다 자신부터 봐주는 곳이니,
자주 찾는 이들에게야 그만큼 친절한 병원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러니 그런 친절을 받고 있는 이들은 계속 그 병원 다니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친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다니겠다는 사람들에겐
그 병원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어머니의 얘기를 듣다가 엇그제 본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악성종양 타티아나씨의 '한국 의료여행'
기사 중의 한 구절,
“한국 의료수준과 장비들은 외국 환자들이 이미 많은 정보를 통해 알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진이 보여주는 친절에 더 큰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덧)
그에 더하여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병원에서 나와 동생의 아파트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택시비가 2500원이 나왔단다.
만원짜리를 꺼내 기사에게 주고
지폐 세 장과 동전을 잔돈으로 받아 내리셔서는
지갑에 넣으려고 보니
당연히 5천원권 한 장과 천원권 두 장으로 알았던 지폐 세 장이
그냥 천원권만 셋이더란다.
그 사이 택시는 몇 미터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어머니께서 다급히 불르셨지만 못봤는지 보고도 모른척인지
그냥 가버리더란다.
순간적으로 확인한 건 택시의 색이 검다는 것과
번호판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숫자 네 개.
그 숫자 네 개 역시 여기에 밝히진 않겠다.
다만, 기억하고 있다가 보이거든 타지는 않을 생각이고,
그리고 그게 혹시 회사에 소속된 택시라면,
그 회사택시는 절대 타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어차피 다시 보인다고 해도 그 얘길 꺼내봐야
그런 일 없었다고 발뺌하면 그뿐일 테니까.
아파트 앞 지정된 택시정류소라 대기중인 택시와 기사들이 몇 있었는데,
택시의 색과 번호의 일부 같은 정보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택시기사들은 충분히 알아봐줄 수도 있는 일이다.
더구나 어머니께서 다급히 떠나는 택시를 손짓해 부르는 것도
방금 그 앞에서 지켜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 있던 택시기사들은
그건 아주머니 잘못이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나무라더란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어머니의 잘못이라는 말 자체는 맞다.
그리고 알아봐줄 수 있다고 해도
같은 택시기사들끼리 그런 걸 가지고 정말 알아봐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나이 많은 분께 대고
그렇게 야박하게 나무라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고
같은 말이라도 좀 더 친절하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폐 하나를 잘못 받아 손해 본 4천원 때문이 아니다.
어머니 역시 그 나이대 다른 분들처럼
10원짜리 하나 꼼꼼히 챙기시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겨우 그정도의 돈 때문에 화가난 건 아니란 얘기다.
지폐를 잘못 내어준 그 택시기사에 대해서는
'병원에서 나와 끙끙 신음소릴 내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고
결코 실수가 아닌 고의였을 것이라고 어머니께선 굳게 믿고 계신다.
그래도 그 택시기사는 실수였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겠지만,
그 아파트 앞의 다른 기사들은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어쨌거나 그렇게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을 연이어 만나면서
어머니는 더 몸이 아파졌다고 말씀하신다.
# by | 2009/04/18 08:20 | 횡설수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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