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종교 : 망상과 실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거 보면 미치겠다
tily님의 글을 읽고..


혈액형에 관한 미신이 이젠 거의 대형종교수준으로 발전했다.
예전 여기저기서 찾아둔 자료들을 한 번 정리해 놓는다.
혈액형을 떠들고 다니던 지인을 위해 백과사전이며 인터넷이며 여기저기 뒤져가면서 모아둔 이야기인데, 원 출처들은 기억 안 난다. --a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국가 Republic〉에서 선택적인 임신으로 인간을 개량하려고 노력하는 사회를 묘사했다.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발상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은 자신의 저서 <유전적 천재 Hereditary Genius〉(1869)에서 명사인 남성들과 부유한 여성들이 계속 결혼하면 결국 천부적 재능을 지닌 종족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골턴은 1883년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1911년 죽을 때까지 우생학의 이점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1926년 설립된 미국우생학회는 상류계급이 우월한 유전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富)와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했다. 미국의 우생학자들은 또한 이탈리아, 그리스, 동유럽 국가와 같이 열등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부터의 이민을 제한하는 것을 지지했고 미국 내에서도 정신병자나 저능아, 간질병 환자 등을 불임시킬 것을 주장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불임법이 미국의 절반 이상의 주에서 통과되었고 강제로 불임시키기 위해 격리하는 것이 197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사실 우생학은 처음부터 인종차별을 전제로 한 연구다. 특히 나치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그러한 경향이 강해졌다. 나치는 유대인, 흑인, 동성애자 등을 학살하며 그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우생학을 사용했다.

혈액형을 나누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ABO식이다. 칼 란트슈타이너(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면역학자/병리학자)가 인간의 혈액에는 적혈구의 원형질막에 붙어 있으며 항원으로 알려진 당분 함유물의 종류에 따라 적어도 3가지의 주요 혈액형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1901) 이것에 각각 A,B,O라고 이름 붙인 게 시작이다.

혈액형을 나누는 방법은 이외에도 아주 많다. 1901년의 ABO식 이후 MN식(1927), Rh식(1940) 등이 연이어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되었다.

이 혈액형에 대한 지식이 우생학 연구에 결합되면서, 특정 혈액형이 다른 혈액형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이 만들어진다. (A유전자는 서유럽·서아시아인 및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에서, O유전자는 북유럽·서유럽인 및 중앙·남아메리카의 인디언에서, B유전자는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서유럽 백인에게 많은 A형은 우수하고, 아시아인에 많은 B형은 뒤떨어진다는 식의 주장이다.

독일에 유학가있던 의사 하라에 의해 이러한 주장이 일본으로 유입된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1927년 심리학자 후루카와가 자기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일본심리학회지에 발표했다. 유럽쪽의 연구와는 달리 자신이 백인종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이 논문은 인종간의 우월을 따지는 게 아니라 혈액형에 따른 성격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어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진다.

이렇게 한 번 사라진 이야기를 되살려낸 것이 일본의 방송작가 노오미 마사히코다. 그가 1971년 써낸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면서 현재의 혈액형 종교가 사실상 시작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대로 된 조사의 결과를 담은 게 아니다. 그저 저자가 작가생활을 하며 만나본 사람들의 관찰한 결과 그렇게 보이더라는 식이어서, 과학은 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3류 소설 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인기를 끌면서 여성지를 중심으로 궁합, 직장, 대인관계, 학습법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된다. 그러니까 타롯카드나 별자리 같은 것들이 인기를 끄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이다.

결국 과학적 근거 전혀 없는 점술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학의 발전을 통해 알게된 혈액형이라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정말로 무슨 과학적 근거라도 있는 양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혈액형 종교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바넘효과로 밖에 볼 수 없다. (바넘효과가 뭔지는 알아서 찾아볼 것)

맘에 드는 이성에게 제대로 말을 붙이지 못하는 건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그런 모습을 놓고 '당신은 소심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모든 사람이 다 '그래 내 성격은 소심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억지로 용기를 짜내어 맘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 모습을 놓고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또 모두 다 '그래 난 꽤나 용감한가 보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혈액형 종교가 특히 일본과 한국에 대유행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A,B,O,AB 네 가지 혈액형이 골고루 존재하는 게 이 두 나라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양인은 대부분 A형과 O형이고, B형과 AB형은 10% 정도 밖에 없다. 즉, 혈액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유행이 발전하기 어려운 조건이란 얘기다. 더구나 나치의 만행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분명한 건 애초에 '황인종은 진화가 덜 된 열등한 종족'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설이, 황인종 국가인 일본과 한국에서만 종교 수준으로 믿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혈액형 종교가 이 나라에서 유행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by 악한 | 2009/03/16 04:29 | 횡설수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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